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 잔 다르크 이야기일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소녀라는 설정 때문이었죠.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영화는 죽음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훨씬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2011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을 쫓는 아이'는 초속 5센티미터 이후 제작된 작품으로, 센타이 필름웍스(Sentai Filmworks)를 통해 북미에도 배급되었습니다. 이 배급사는 케이온, 노게임 노라이프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영어권에 소개했던 회사입니다(출처: Traditional Catholic Weeb). 영화는 1973년 일본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1살 소녀 아스나가 지하 세계 아가르타로 떠나는 여정을 그립니다.
상실을 마주하는 여정, 그 무게감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주제는 '상실 후 수용(post-loss acceptance)'입니다. 여기서 상실 후 수용이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현실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스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푸른 수정으로 작동하는 음악 플레이어로 땅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그녀에게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죠.
어느 날 아스나는 아가르타라는 이국 땅에서 온 소년 슌을 만나 금세 친해지지만, 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건, 영화가 죽음을 미화하거나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스나의 어머니가 딸에게 슌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 아스나가 처음엔 부인하다가 결국 슬픔에 잠기는 과정은 실제 애도 단계(grief stages)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애도 단계란 심리학자 퀴블러-로스가 정리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를 말합니다.
한편 아스나의 새 담임 선생님인 류지 모리사키는 이자나미와 이자나기 신화를 들려주며 아스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자나기가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옥을 오갔다는 이야기는 영화의 핵심 모티브가 되죠. 류지는 아가르타의 신 케찰코아틀에 대한 지식을 아스나에게 털어놓으며, 자신도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리사를 되살리기 위해 아가르타를 찾고 있음을 밝힙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애니메이션은 북미권에서는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교육 프로그램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가르타 세계관의 빛과 그림자
아가르타는 인간과 신이 함께 살아가는 지하 문명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아가르타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황무지로 변해 있죠. 지구인들은 모두 "톱사이더(Topsider)"라고 조롱받으며, 아스나와 류지는 이조쿠(Izoku)라는 좀비 같은 존재들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여기서 이조쾰란 아가르타에서 생명을 잃었지만 완전히 소멸하지 못하고 떠도는 망자의 형상을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세계관 구축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가르타 문명의 지속적인 쇠퇴 원인, 극도로 낮은 출생률과 사망률, 지도부 구조, 전통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류지가 수업 후 케찰코아틀이 인간의 신성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관계를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바로는, 케찰코아틀은 단 한 장면—죽은 고양이 미미가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에서만 의미 있게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는 탁월합니다. 광활한 자연과 신비로운 지하 세계를 표현하는 배경 작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신카이 마코토만의 섬세한 빛 표현이 돋보입니다. 여정 중 마주치는 괴물들과 장애물은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생명의 샘을 찾아가는 모험과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실제로 감독은 영국 휴가 중 언덕이 많은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Traditional Catholic Weeb).
감정의 깊이와 캐릭터의 성장
이 영화가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캐릭터의 감정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아스나, 신, 류지 세 명은 각각 아버지, 형,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가르타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죠.
특히 류지가 생과 사의 문에 도착해 아내를 되살리려는 장면은 영화의 절정입니다. 그는 아내의 영혼을 담을 숙주로 아스나가 지목되자 절망하지만, 신이 수정구를 파괴하며 아스나를 구합니다. 이 순간 류지는 아내 리사와 신의 격려를 받으며 "살아남고, 모든 것을 놓아주라"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영화가 단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넘어 '살아남은 자의 책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주인공 아스나는 영화 후반 20분 전까지 주로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을 받는 역할에 머물러, 다소 수동적인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류지의 성숙함과 경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죠. 아가르타 시민들도 극소수로만 등장해 세계관의 깊이를 더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쿠마키 안리의 엔딩곡 '안녕, 안녕 그리고 다시 안녕'이 영화의 정서를 완벽하게 담아냅니다. 초속 5센티미터처럼 마지막에만 흐르는 이 곡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지만, 나머지 사운드트랙은 판타지 모험물에 어울리는 웅장함이 부족했습니다.
'별을 쫓는 아이'를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판타지 모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해 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영화는 죽음과 슬픔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세계관 구축과 줄거리 해결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감정의 깊이와 시각적 완성도만큼은 확실히 보장된 작품입니다. 단순히 판타지 어드벤처로 기대하기보다는,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감상할 때 더 큰 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