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원펀맨 1기의 압도적인 액션과 유머에 매료되어 2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속편은 전작의 완성도를 이어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원펀맨 2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제작사가 매드하우스에서 JC스태프로 변경되며 작화와 연출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주인공 사이타마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며 작품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가로우 서사 확장과 사이타마 비중 감소
원펀맨 2기는 히어로 헌터 가로우를 중심으로 서사를 확장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가로우는 어린 시절 히어로가 아닌 괴인에 동정심을 느낀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고, 이러한 트라우마가 히어로에 대한 증오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와 성장의 궤적을 의미합니다. 가로우의 캐릭터 아크는 단순한 악당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상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며 느낀 점은, 가로우의 과거 회상 장면이 꽤 설득력 있게 다뤄졌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기와 신념이 명확히 드러나면서 단순히 '나쁜 놈'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 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인 사이타마의 존재감이 극도로 약해졌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속편은 주인공의 성장과 갈등을 더 깊이 파고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제가 본 원펀맨 2기는 정반대였습니다. 사이타마는 무술 토너먼트에 참가해 '차란코'로 변장하고 대회를 진행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무려 5화나 할애되면서도 결국 한 방에 승리하는 뻔한 결말로 끝났습니다. 사이타마가 무술을 배우고 싶어서 참가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시간에 괴인 협회와의 전투나 다른 히어로들의 활약이 더 비중 있게 다뤄졌고, 사이타마는 S급 히어로 킹과 비디오 게임이나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제목이 '원펀맨'인데 정작 원펀맨은 뒷전이었으니까요. 1기에서 사이타마가 겪었던 존재론적 고민, 즉 너무 강해서 싸움의 의미를 잃어버린 히어로의 공허함이라는 핵심 서사가 2기에서는 9화에서 킹과의 대화로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제노스를 제자로 키우겠다던 설정도 흐지부지됐고, 사이타마와 제노스의 스승-제자 관계 발전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출처: 애니메이션 리뷰 아카이브).
제작사 변경과 액션 연출의 퇴보
원펀맨 2기의 또 다른 결정적 문제는 제작사 변경에 따른 작화와 연출의 질적 저하였습니다. 1기를 제작한 매드하우스는 '헌터×헌터', '데스노트' 등을 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표 스튜디오입니다. 여기서 '작화 퀄리티(作畵 Quality)'란 애니메이션의 그림 완성도와 움직임의 자연스러움을 의미하는 용어로, 시청자 몰입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2기를 맡은 JC스태프는 '어떤 마술의 인덱스', '토라도라!' 등을 제작한 경력이 있지만, 원펀맨처럼 고강도 액션 신이 중심인 작품에서는 매드하우스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1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노스와 모스키토 걸의 전투, 심해왕과의 대결, 보로스와의 최종 전투였는데, 이런 장면들은 단순히 '싸움'이 아니라 화면 구성과 타이밍, 효과음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2기에서는 가로우가 A급 히어로들과 싸우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대부분 정적이고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특히 '프레임 레이트(Frame Rate)' 저하가 눈에 띄었는데, 이는 초당 그려지는 그림의 수가 줄어들어 동작이 뚝뚝 끊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1기의 유려한 액션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이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제작사 변경으로 인한 문제는 작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출 스타일도 달라졌는데, 1기에서 보여줬던 과장되고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가 사라지고 평범한 구도가 반복됐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매체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지적하며 팬들의 실망이 컸다고 분석했습니다(출처: 애니메이션 뉴스 네트워크).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이었던 부분은 괴인들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지네 괴물이나 백안문어처럼 소름 끼치는 디자인부터 해바라기 히마와리처럼 코믹한 디자인까지 다양성이 있었고, 이는 원작 만화의 개성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도 움직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매력이 반감되는 법입니다.
추가로 음악적 측면을 살펴보면:
- 오프닝: JAM Project의 'Seijaku no Apostle' (1기보다 임팩트는 약했지만 준수한 편)
- 엔딩: 사이타마 성우 후루카와 마코토의 'Chizu ga Nakutemo Modoru kara' (1기 엔딩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았음)
- OST: 1기에서 사용된 곡들이 대부분 재사용되어 새로운 느낌은 부족했음
결국 원펀맨 2기는 세계관 확장과 가로우라는 입체적 악역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정작 작품의 핵심인 사이타마와 그의 독특한 히어로 철학을 뒷전으로 밀어버렸습니다. 4년을 기다린 팬으로서 이보다 아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제작진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주인공의 존재감만큼은 지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3기가 나온다면, 사이타마가 다시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원펀맨을 사랑했던 이유니까요.
참고: https://traditionalcatholicweeb.wordpress.com/2020/06/15/anime-review-38-one-punch-man-part-2/